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 만 빼고는 너무도 상쾌한 아침이었다. 차를 몰고 훈련장에 가니 입구 전부터 예비군 용품을 파는 장사꾼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군대 있을 때에는 군대에서 지급되는 용품이 저렇게까지 팔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맨날 뭘 지급하기만 하면 나중에 반납해야 되니 잃어버리면 영창이라는 둥… 세상 밖에서는 이렇게 군용품이 버젓이 한갓 장사꾼들에게 팔리지 않는가?
‘아차, 고무링을 안 가지고 왔군.’
현역에 있을 때에나 예비역으로 있을 때에나,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고무링이다. 바짓단을 접어서 말아 넣어 고정시키기 위한 용도의 고무링은 사실 군복을 군화에 집어 넣으면 필요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꼭 이것을 착용해야 되는 이 하찮은 물건은 용도가 불분명하고 작기 때문에 잘 잊어먹는다. 하는 수 없이 오늘도 제작년 처럼 고무링을 사고 말았다.
나 역시 예비군 훈련장에 갈 때에는 현역 때 휴가 복귀와는 정반대로 흥이 난다. 회사 안나가서 좋고, 바깥 공기 마실 수 있어 좋고, 나무 그늘에서 점심 먹고 낮잠을 즐길 수 있어 좋고. 얼마나 좋은지 부르기 싫어서 억지로 부르던 군가들을 계속 흥얼거린다. 이런 기분이 교육 한 시간정도 지나면 변하기 시작한다. 첫째 지겨워 진다. 이를 없애기 위해 건빵 주머니에 갖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온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가지고 오고, 어떤 사람들은 신문을 접어서 온다. 나는 오늘 PDA를 가지고 왔다. 그 안에 소설 좀 담아오고 동영상 1개를 담아왔다. 다른 한 쪽에서는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둘째, 조금이라도 힘든 훈련을 받게 되면 예비군 훈련이 점점 빡세진다는 둥의 불만이 맘 속에서 혹은 맘 밖으로 표출된다. 사격하고, 수류탄 투척까지는 괜찮았는데 화생방 교육한다고 마스크 썼다 벗었다 시키고 제일 싫은 것이 각개 훈련인데 그거 하면 훈련 마치고 나서, 예비군 훈련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내리게 된다.
훈련 받은 지 2시간 째, 비가 오는 관계로 계속 실내 교육이다. 빡센 훈련은 비오면 시킬 수 없다. 우리 나라 군대가 비가 와도 정상적으로 훈련을 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있지 않기 때문에 (예를 들어 축구, 야구 같이 예비군 돔 경기장 같은 것들은 22세기가 와도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하루종일 시청각 교육이었다. 이럴 때에는 정신적인 지루함만 버티면 된다. 난 계속 PDA만 보았다. TV가지고 온 사람은 계속 TV만 보고, 책 가지고 온 사람은 책 보고 그 외에 사람들은 지루한 시청각 자료를 자장가 삼아 졸고 있었다.
동영상을 보는 중,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걸 받아…. 아님 말어….. 받으면 받는 순간이 괴로울 것 같고, 안 받으면 다음날이 괴로울 것 같고…..
전화벨 소리에 사람들도 나를 쳐다본다. 창피하다.
그런데, 내 맘속의 동요와는 달리 내 손은 침착하게 밧데리를 전화기로부터 분리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교육장은 고요해지고, 내 맘의 동요도 없어졌다.
그리고, 난 다시 PDA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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